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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

학자들은 간통이 일부일처제와 결정적인 상관관계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일부일처제는 농경과 목축이 발달하고 사유재산제도가 생겨나면서 확립됐다. 사유재산이 생겨나면서 상속이 생겨났고 그러기 위해서는 적자를 확보해야만 했다. 남성혈통을 보호하고 자신의 순수한 자녀에게 재산을 상속하기 위해서 간통은 막아야만 했던 그 무엇인 것이었다.

간통에 대한 금지는 서양뿐만이 아니었다. 고조선과 부여사회 때도 간통은 금지되고 처벌됐다. 백제에서는 간통한 여성을 남편 집 노비로 삼기도 하였다. 부여에서는 간통한 자는 모두 죽어야만 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극형에 처해졌다. 이러한 극형은 국가에 의해서도 행해졌지만 아버지나 오빠 등 집안의 남자들에 의해서 행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사회에서나 간통금지는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에게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그런 점에서 간통죄는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이중적인 성도덕을 지탱하는 대표적인 무기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우리 형법은 53년 10월까지는 간통죄를 유부녀에게만 적용하였다. 물론 그 이후로 개정돼 현재는 남녀 모두에게 적용된다.(19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