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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사이의 우정 분류

<좁은 문>의 지은이 앙드레 지드는 일생 동안 아내에게 손도 대지 않는 정신적 부부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침실에서 같이 지내 본 사람이 없으니 정확한 사실을 확인할 수야 없겠지만, 지드가 동성애자란 소문에 비춰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 듯도 싶다. 아마도 지드는 성애의 대상으로 아내를 바라보는 대신 좋은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로 생각했을 것이다.

지드처럼 동성애자가 아니라도 남녀 사이에 순수한 우정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가끔 가져 본다. 북유럽처럼 성에 대한 금기나 억압이 많지 않은 나라일수록 남녀 사이가 친구처럼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남녀칠세부동석의 동양문화권에서는 이성간에 특별한 감정이 개입되기 쉽다. 전통적인 유교사회로부터 개인적 산업사회문화로 급격히 변하고 있는 우리 나라는 이런 양극단이 혼재함을 관찰할 수 있기에 재미있는 일도 많다. 겉으로는 형이니 선배니 하면서도 속으로는 별별 생각을 남몰래 한다든가, 사랑이 식었을 때 이젠 그저 친구처럼 지내자라는 식의 발뺌은 하나의 상투어가 된 것도 그 예가 될 것이다.

남녀 사이의 우정을 분류하자면 아마도 다음의 네 가지 유형이 있겠다.

첫째로는 상대방에게 성적 매력을 느낄 수는 없지만 인간적인 향기 때문에 정말 친구처럼 가까이 하고 싶은 경우이다. 좀 밋밋하고 맨송맨송하긴 하되 안전하고 편안한 사이로 동성이라면 끼어들 질투나 경쟁심리가 빠져나가기 때문에 친밀감을 맛볼 수도 있다.

두번째로는 분명히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결부된 호감을 갖고 있긴 하지만 여러 가지 저항들 때문에 사랑의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이다. 둘중 하나가 기혼이라든가 나이 등 사회적 조건의 차이가 커서 도저히 결합이 힘들다든지, 이성애 관계라기보다 깊숙한 정서적 교류와 책임을 겁내는 부류들이 아마 여기에 속할 것이다.

세번째로는 애초 이성애 관계로 시작하였지만 사랑의 불꽃이 다타버려 메마른 사무적 볼 일만 남은 경우이다. 예컨대 애정없는 부부 사이라든가 묵은 인연 때문에 질질 끌려가는 오래된 연인들이 여기 해당된다. 실은 이런 지경에서는 상대에 대한 여러 가지 부정적 기억들 때문에 우정의 감정조차 유지하기 힘들 때가 많다.

넷째로는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사회적 이해관계 때문에 얽혀 있는 경우인데 우정이라기 보다는 동료애라고 하는 게 맞는 말이다. 이렇게 몇 개의 가능성을 분류해 보았지만 우정이나 사랑에 대해 명백하게 정의내리고 칼같이 구분한다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듯도 싶다. 따지고 보면 모든 감정이나 사고에 변하지 않는 본체란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정말로 현실적인 것은 우리가 관찰하고 느끼는 현상 그 자체에만 존재한다.

사랑이나 우정, 양쪽이 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감정일 터이니 잘 보듬고 가꾸어 황량한 세상이 잠시나마 장밋빛으로 보이기만 한다면 그만으로 충분한 게 아닐까.

이나미/신경정신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