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is responsive to your Click

노년의 성과 사랑

이미 오십줄에 든 미국 여배우 패러 포셋이 <플레이 보이>의 모델로 나섰다는 소식이 들린다. `10대 사랑은 성냥불, 20대 사랑은 장작불, 30대 사랑은 석유불, 40대 사랑은 연탄불, 50대 사랑은 뜨뜻미지근한 온돌, 60대 사랑은 화톳불'이라는 나이와 사랑의 방식을 빗댄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패러 포셋 정도면 나이와 상관없이 뜨거운 사랑을 할 법도 하다.

사실 임상에서 환자들을 보면 성과 나이는 꼭 반비례하는 것 같지도 않다. 괴테, 피카소, 러셀과 같이 죽을 때까지 화려한 여성편력을 자랑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20대에 이미 발기불능이나 조루가 와서 부인의 불평을 울며 겨자먹기로 듣는 이들도 있다.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60대가 넘어서도 남편과 성생활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이가 있는가 하면, 30대에도 성생활을 끔찍하게 생각해 불화의 요인을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생리적 성은 노화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해 발기 횟수가 줄어든다든가 질의 분비물이 적어져서 질염 등에 자주 감염될 수는 있지만 성애나 사랑의 감정은 노화와는 별 상관이 없다. 그런데도 사랑이나 성은 노인들과는 거리가 멀다는 편견 때문에 노인들의 자연스런 감정이 억압되고 뒤틀리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홀로 된 할머니가 재혼을 하고 싶어도 자식들이 노망났다고 할까봐 좋아하는 상대를 몰래몰래 만나느라 가슴졸이는 일을 가끔 본다. 대중매체나 문학작품 등에서도 노인들은 대개 무성적(無性的)인 존재일 뿐으로, 아주 현명하거나 아니면 극단적으로 주책맞은 무식한 노인네로 묘사된다. 있는 그대로의 인간으로 노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자기 부모만큼은 성생활 같이 더러운 행위는 일체 하지 않는 도덕적인 존재로 남아 있기를 원하는 어린 시절의 미숙한 감정이 투사된 것으로 또 하나의 차별이자 억압이 될 수도 있다. 남자 노인들만 해도 동첩(童妾)을 들이고 방중술을 통해 회춘하는 등의 도교적 전통 때문에 자신의 성적 감정을 비교적 자유롭게 표현하는데 반해 할머니들은 전적으로 성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아마 우리나라의 유난스런 고부갈등 문제도 노인의 성적 억압에서 일부 기인하는 바가 없지 않을 것이다.

성적 쾌감이 극치에 이르는 순간, 문득 유한한 시간은 정지되고 우리의 자아는 무한한 우주로 확장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바로 그 환각으로부터 옴과 탄트라의 비밀스러운 문이 열리는 것 아닌가. 노년은 죽음과 훨씬 더 근접해 있다는 점에서 이런 성의 열락이 더 절실한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평균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앞으로 십여년 뒤면 삼청공원, 파고다공원 뿐 아니라 압구정동, 신촌을 누비며 진하게 사랑을 나누는 황혼의 아베크족들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성기확대 수술을 받겠다는 칠십 넘은 노인들이 적지 않다. 그들을 조롱하고 비난할 권리가 젊은 사람들에게 있다고 당신은 생각하는가.(1997년)

이나미/이나미신경정신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