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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권력상품

미처 주변정리를 하지못했던 김유신 장군의 백마는 무심코 작은집으로 갔다가 장군의 단칼에 목이 날아가 버린다. 성문란은 봉건시대에 더 심했을까. 조선조 세종때에 와서는 오늘의 영국 왕실이 무색할 정도로 그 스켄들의 규모가 컸다고 한다. 1426년 당대의 고위층 유구수의 딸은 평택현감과 정략결혼을 했지만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한양의 친정에 올라와 당시 정승을 포함한 고급공무원들과 놀아나다 들통이 났다.

그녀가 관계한 남자는 황희 정승의 아들, 대사헌 안순등 기라성같은 엘리트들은 물론이고 건달제비까지 모두 50여명이었다. 이중 30여명이 참수 유배, 그리고 곤장형의 실형을 받은 사건이었다.

<세종실록후속록>에 의하면 세종은 강력한 공안정국을 통하여 성문란에 극형처방의 법을 제정했다. 특명암행어사 이귀산의 처 유씨의 불륜사건이 터지자, 그녀의 벗긴 가슴에 '자녀'라는 주홍글씨를 달게하고 3일간 시장바닥에 돌린후 아무도 돌을 던지지 못하는 와중에 사형이 집행되기도 했다.

이성계에 이어 세조 역시 쿠데타에 의해 조선조 제 7대왕으로 왕위에 오른다. 반대파를 처단하고 그들의 조강지처와 작은 부인들을 전리품으로 삼아 자파의 가신들에게 노예로 분배했다. 양반계급이 하루아침에 천민의 신분으로 노예가 되는 하천제도가 입법된 것이다.

늙은 창녀의 이론적 아버지인 미셀 푸코가 '권력의 행사'로서 지적한 한국형 권력매춘인 셈이다.

김용옥에 의하면 한국처럼 여성의 기가 강한 나라는 세계에 없다고 한다. 풍수지리적으로나, 맨날 당하는 지리적 입장에서도 여성의 강한 생명력에 의해서 이 나라가 살아남았다고 보아진다.

여성의 기란 건강의 상징이다. 생명을 창조하고 먹여살리며, 에너지의 총체로서의 땅의 신이라는 것이다. 조선태조는 공자말씀을 빌려와 기가 센 여성들을 조용하게 만든 사람이다. 창피하고 부끄럽다는 원초적 비동물성을 내세워 본능의 평등과 보편성을 억압한 것이다. 그리하여 옛사람들의 저항은 물방아간에서 은밀하게 성립됐고 종교적 핑계로 여사당에서 유사한 매음행위의 축제를 벌임으로써 견우와 직녀의 부 킹(Booking) 을 유도하기도 했다.

매춘의 기원이 빈곤에서건 '화냥끼'에서건 간에(박종성, 1996) 돈과 종족보존이라는 에너지는 원래 하나이다. 오늘의 압구정동을 누비는 오렌지족들의 배꼽티는 조선왕조 오백년의 남성지배에 대한 한스러운 혁명인지도 모른다. 원래의 좌청룡 우백호의 땅에 잉태한 탯줄을 통한 '집단반란'이기도 하다.

폴란드 출신의 여류화가 다미라 렘삐카는 여성의 오만함과 에로스를 함께 표현해내는 능력이 있었다. 그녀의 1927년작 <할렘가의 여인>에 나오는 주인공은 구속된 여인의 우수에 찬 백치미를 보여주는, 현대적 창녀의 원조 일러스터라 할 수 있겠다.

일러스터 게리 케레이의 1994년 작품. 호스테스가 팁으로 받은 돈을 포주와 함께 뻗뻗하게 다려서 침대아래 숨긴다는 내용의 소설 <돈세탁>을 읽고 나서 그렸다.

여류 일러스터 안 하우젠의 1993년 작 <암스텔담의 창가 여인>. 창녀가 책을 읽는 한편으로 개를 안고있고 창밖에서는 남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감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