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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들이 외도를 시작한다.



아내 외도의 진화심리학적 근거

여성의 성, 특히 아내의 성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은, 여성은 선천적으로 약한 성욕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 생각은 이 제는 널리 알려진 성과학의 지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데, 여성의 외도 욕구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1994년 8월 15일자 <타임>에는 남녀의 외도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는 기사가 실렸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자신의 유전인자를 다음 세대로 전수하려는 목적으로 설계되어 있다고한다. 자연은 인간에게 차세대를 위해서 사랑에 빠지게도 하고 성욕도 느끼게 하고 필요하다면 외도도 하게 한다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그 근거의 일부는 진화생물학에 두고 있다. 진화 생물학에 두고 있다. 진화 생물학은 동물에 대한 연구로 인간에 대한 지식을 유추해 내고 있으므로 그 추리의 정당성에 대한 비판을 받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지배집단-예를 들어, 남성 등-의 이익에 봉사해 온 편이라 미심쩍은 눈초리를 받는 학문이기는 하나 흥미 있는 몇 가지 사실을 말해 주고 있어 적어 보기로 한다.

첫째,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데 있어 남녀 모두 일부일처제적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즉,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충동에 있어 남녀가 '대칭적'이라는 것이다. 여성이 선천적으로 정조관념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근거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남성의 고환의 무게이고 다른 하나는 정자의 수이다. 인간과 비슷한 영장류 중에서 일부일처적인 기본이나 제도적으로 일부다처인 고릴라의 고환의 무게는 비율적으로 가벼운 편인데 일처다부이기도 한 침팬지의 고환의 무게는 무겁다고 한다. 그런데 남성의 고환은 고릴라와 침팬지 사이에 있어 여성의 일처다부성을 증명한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남성이 아내와 1주일만에 성관 계를 가진다고 할 때, 아내가 독감으로 1주일 동안 집에만 있은 후에 가지는 경우와 아내가 출장 갔다 1주일만에 돌아온 후에 가지는 경우를 비교해 보면 아내가 다른 남자의 정자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은 후자의 경우 정자의 수가 많아진다고 한다. 다시 말해 다른 남자의 정 자를 기기 위하여 더 많은 정자를 생산한다는 것이고 이런 생리적 기제가 여성의 일처다부성을 증명한다는 것이다.(정자 수의 차이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아내를 본 남편보다는 1주일만에 아내를 본 남편이 그리움, 반가움, 신선함 등이 합쳐진 강한 감정을 성욕과 함께 느낄 것이고 그것은 생리적인 대사를 활발하게 했을 것이라는 심리적 해석 말이다. 물론 진화심리학자는 자연의 '깊은 뜻"을 모르는 소리라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그런 일반 심리적 해석은 인간을 자연의 도구가 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미덕을 가지는 것도 사실이다.)

남성이 정조관념이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 증명할 필요가 있을까마는 진화심리학에서 근거로 제시하는 것을 소개하면 세 가지이다.

첫째는 남녀의 몸크기는 수컷이 암컷보다 클수록 일부다처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둘째는 일부다처인 사회가 지구상에 많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 사실을 놓고 <타임>의 기자는 남녀 모두 정조관념이 없다 해도 실제로 두 번째 세 번째 배우자를 얻는 행동을 하는 것은 남성들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여기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남성이 두 번째 배우자를 얻는 것은 여성보다 생물학적으로 더 지조가 없어서가 아니라 정치경제적으로 더 힘이 많아서라는 해석이다. 대부분의 남녀간의 비대칭성은 궁극적으로 힘의 차이에서 나오고 있다.) 세 번째 근거는 남녀의 생식능력의 차이로서 남성에게는 여성에게보다 유전자를 전수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여성이 아무리 많은 성적 상대를 가져도 1년에 한 번 수태할 수 있는 반면 남성은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수태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 생리적 차이로 남성은 여성보다 강한 성욕을 가지고 있으며 여성에 비해 성적 상대에 대해 까다롭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은 좋은 유전자를 가진 남성이나 태어날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제공하는 남성에게 관심을 가진다고 한다.(이것은 오늘의 현실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외도의 경우는 좀 다르겠지만 결혼할 때 유전자를 더 따지는 것은 오히려 남성이다. 지능이 어머니를 닮는다는 생각으로 남성들은 머리가 나쁘지 않은 여성을 선택하며, 특히 키가 작은 남성인 경우 2세를 위하여 키 큰 여성과 결혼하려 하는 것이다. )

둘째 진화심리학은 남녀가 외도에서 중시하는 점이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의 자손은 그 어떤 동물보다 오래 부모의 돌봄을 필요로 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유전자의 교활함은 남녀를 사랑에 빠뜨려 아버지가 자손에게 헌신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의 교활함은 완전하지 못해 부모의 외도를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남녀간의 사랑이 보편적인 현상임을 박히지만 동시에 사랑의 수명이 길지 못함도 박히고 잇다. 여성의 외도는 좋은 유전자를 가진 자손을 수태하기 위해서나 자손을 위해 많은 것을 제공할 남성들-그 여성의 자손이 자신의 자식이라고 여길 남성들-을 찾기 위해서이고, 남성의 외도는 자신의 유전자를 가능한 많이 퍼뜨리기 위해서이다.

문제는 남녀의 외도가 각자가 추구하는 목적에 해가 된다는 것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외도하여 다른 여성과 정서적으로 가까워진 남편은 자손에 대해 정서적으로 소홀해질 것이고 따라서 물질적인 제공도 덜 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삶의 목적은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손을 잘 기르는 것이데, 남편의 외도는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반면에 남성의 입장에서 볼 때 외도하여 다른 남성의 유전자를 받아들인 아내는 남편의 유전자를 거부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남성의 삶의 목적은 자신의 유전자를 가능한 한 많이 퍼뜨리는 것인데, 아내의 외도는 그것을 완전히 무산시키는 것이다. 우리말에도 '오쟁이진 남편'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다른 남자의 아이를 키우고 있을지도 모르는 남자라는 그 말에는 남자 중 가장 못난 남자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 여성은 남편의 외도에서 정서적인 측면에 관심을 갖고, 남성은 아내의 외도에서 성적인 측면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 점은 글래스 교수의 자기보고식 조사에서 나타났었는데. 데이비드 버스 교수라는 진화심리학자의 실험에서도 드러났다. 버스 교수는 피험자인 남녀들에게 배우자가 외도하는 상상을 하게 했다. 남성이 아내의 성적 불성실을 상상할 때는 석 잔의 커피를 마신 것처럼 심장이 빨리 뛰었으나 아내의 정서적 불성실을 상상할 때는 정상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침착해졌다고 한다. 반면에 여성은 남편의 정서적 불성실-새로운 사랑-을 상상할 때 더 깊은 절망을 느꼈다는 것이다.(제1장에서 말한 대로 남성은 성적 동기로 외도를 하고 여성은 정서적 동기로 외도를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외도의 현실이다. 다시 말해 남편은 아내가 덜 두려워하는 성적 불성실을 범하고 아내는 남편이 덜 두려워하는 정서적 불성실을 범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도의 유형도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것인가? 이것은 연구해 볼 문제이다.)

문제는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유전자의 교활함 이외에도, 현대라는 시대적 환경에는 외도를 부추기는 요소들이 있다. 도시에서 가능한 익명성, 피임 기술의 발달, 영화나 잡지 등을 통해 보여지는 성적 이미지들이 그것이다. 그것들의 영향을 조사한 것을 보면, 원시부적에서 남편 이외의 남자의 아이를 낳는 비율은 2%인 반면 현대 대도시에서 그럴 비율은 20%가 넘는다는 것이다. 바라는 남성들이 희망사항을 여성에게 투사한 것일 뿐이다. 그 결과 가부장제 일부일처제하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자연적 성향을 사회적 압력으로 억압하고 부정해야 했던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여성이 성적 쾌락을 강하게 느끼는 성기인 음핵을 절개하는 것이나, 한복이 평상복이던 시절 우리 나라에서 치마말기로 유방을 조이던 것은 여성의 성성이 사회의 지배를 당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그러므로 가부장제 일부일처제를 뒷받침해 온 비대칭적 조건들이 조금씩 완화되고 있는 오늘날, 여성들이 일방적으로 강요당해온 성성의 억압에 대한 반기를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상당사례에서 드러났듯이 외도를 하는 아내들은 남편과의 관계와 결혼생활에 불만을 가지고 잇다. 아내에 대한 불만이 없어도 외도를 하는 경우가 있는 남편들과는 달리, 아내의 외도에는 반드시 결핍동기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담사례를 근거로 아내의 외도를 분석하기에는 그 사례의 수가 너무 적기-인천 여성의 전화가 1년 동안 받은 상담건수가 808건인데 그 중 단지 9건이 아내의 외도에 관한 상담이었다- 때문에, 아내의 외도를 다룬 소설들을 통하여 여성 외도의 모습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먼저 계층별로 보자. 중산층에 속하는 아내의 외도를 그니 강태기의 <빈둥지 여인>, 이경자의<혼자 눈뜨는 아침>,조성기의 <우리 시대의 소설가>,조문경의 <시를 쓰듯 죄를 짓다>를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부부관계가 전통적인 가부장적 관계라는 점이다. 부부관계는 분업화된 성 역할에 기초를 두고 있다. 남편은 남성의 역할인 직업을 우선시하느라 아내와 가족을 위한 시간을 못내는 남성우월의식을 가진 권위주의자이다. 그리고 아내는 여성답게 남편을 섬기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면서, 남편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말도록 기대된다. 다시 말해 남편들은 경제적인 부담을 지는 대신 부부관계에서 아내의 주도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아내들은 남편과 인격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만나지 못하면서 자아를 잃어 가는 불만을 느끼며, 자아를 찾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게 된다.

둘째는 부부간의 성관 계가 의무적이고 일방적이라는 점이다. 남편은 자신의 외도를 당연시하며, 아내와의 성관 계는 의무나 봉사정도로 인식한다. 성적으로도 남편과 만날 수 없는 아내들은 자신을 여성으로서, 성적 존재로서 드러내고 인정받고 싶다는 요구를 가지게 된다.

세 번째의 공통점은 아내들이 외도상대들을 우연히 만난다는 점이다. <빈 둥지 여인.>에서는 자동차를 사러 갔다가 세일즈맨을 만나고, <혼자 눈뜨는 아침>에서는 남편을 만나러 가다가 비행기 안에서 만나고,<우리 시대의 소설가>에서는 서점에 시집을 사러 갔다가 만난다.

중산층의 아내들은 남편에 대한 불만으로 외도할 잠재적 준비가 되어 있다고는 해도 의식적으로 외도상대를 구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들은 주변에서 우연히 감정이 통하는 사람과 외도를 하는 것이다. 상담사례들을 보아도 손쉽게 만나게 되는 운전연습교사, 자녀의 담임교사, 세일즈맨, 내담자가 운영하는 가게의 손님 등이 외도상대가 되고 있다. 따라서 중산층의 아내는 외도는 쌍방의 선택이 있을 때 이루어진다. 그들의 외도에는 가벼운 종류의 것이라 해도 연애감정이 매개가 되어 주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외도를 통하여 자아의 변화를 겪는 것이다. <빈 둥지 여인>의 주인공은 집안일 에서 벗어나 자아를 찾아 방황하고, <혼자 눈뜨는 아침>의 주인공은 '나'로 살고 싶다며 이혼을 한다.

반면에 상류층에 속하는 졸부의 이야기를 그린 송숙영의 <강남 아리랑>을 보면, 상류층의 아내들은 유흥업소 등에서 돈으로 외도상대를 사고 있다. 이 상류층의 아내에게는 가부장제 부부관계의 문제보다는 돈이 일차적인 관심사여서, 외도를 통하여서도 중산층의 아내처럼 자아를 찾는다던가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의 중요성을 더욱 깨달아 아내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확고히 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외도상대란 하나의 상품이다. 그들이 외롭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을 때 사는 물건인 것이다. 주도권은 그들에게 있다. 저소득층의 외도는 어떤 것인가. 이문열은 <익명의 섬>에서 산골에 사는 혈연공동체에서의 외도라는 다소 특별한 경우를 그리고 있다. 이 마을에는 기혼여성들의 외도상대 한 명이 남편들의 묵인 하에 존재한다. 반면에 그 남성은 미치광이 취급을 당하며 살지만 나름대로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서 마을 아낙네들의 외도상대가 되어주며, 그들의 보호를 받는다. 그 규칙은 '젊은 상대는 피하고 같은 상대는 두 번 하지 않는다'이다. 규칙을 깨뜨리면 남정네들로부터 뭇매를 맞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남편들이 아내의 성욕분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재하는 도시의 저소득층 동네에서는 그런 관습을 볼 수 없지만, 소설 속의 산골과 공통이 있다면 그것은 아내들의 외도가 개인적으로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맞벌이부부가 많은 저소득층 동네에서 인기 있는 소위 '묻지마'관광은 일종의 그룹미팅으로 같은 동네에 사는 한 집단의 기혼여성들 또는 같은 직장에 다니는 한 집단의 기혼여성이, 한 집단의 남성들과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놀러가는 것이다. 그 관광을 떠나는 모든 여성들이 외도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수의 아내 외도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적극적 외도, 소극적 외도

지금까지는 아내의 외도를 경제계층에 따라 나누어 보았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점은 다양한 외도의 외적 형태가 아니라, 아내의 외도가 '남편의 외도를 낳은 가부장적 결혼제도'와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하는 점이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남편의 외도는 가부장제 결혼제도가 허용해 주었던 것이지만 아내의 외도는 가부장제 결혼제도가 절대 허용해 주었던 것이지만 아내의 외도는 가부장제 결혼제도가 절대 금지해 온 것이다. 아내의 외도는 그것이 어떤 형태를 가지더라도 가부장제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내의 외도를 가부장제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에 도전하는 적극적인 외도와 그런 문제의식 없이 가부장제 결혼이 가져오는 정서적 외로움이나 성의 일방성에서 도피하려는 소극적인 외도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적극적인 외도의 모습은 「시를 쓰듯 죄를 짓다」에 나타난다. 주인공은 남편의 권위의식을 거부하며 외도를 통하여 자아를 찾고 싶어하는데 그 마음을 '간음은 혁명이 될 수 있다'고 표현한다. 남편의 권위에 직접 도전하지는 못하지만 간접적으로 그 권위의 허구를 드러내는 셈이다. 또 다른 모습은 이경자의 「살아나는 시간」에서 볼 수 있다. 맏며느리가 되어 시부모 모시고 남편 섬기고 아이 낳아 기르고 시동생 시누이 공부시키고 시집장가 보내는 등의 여성의 역할을 다한 주인공은 몇 년 전부터 시작된 남편의 외도도 남성의 권리쯤으로 인식한다. 그러면서도 그런 역할의 차이가 `서럽고 억울하여`옛 남자친구를 만나 성관계까지 갖게 된다. 그런데 그 행위는 마치 그것이 제자리인 듯이 열등한 위치에 붙박혀 있던 주인공을 남편과 동등한 자리로 움직여 가게 하는 힘이 되어 준다. 늦게 귀가한 남편의 옷을 받아 걸면서 주인공은 남편에게 "내일부터 옷은 당신이 걸어요!"라고 말하며 가부장제에 도전하는 것이다.

또 다른 종류의 외도인 소극적인 외도의 모습은 이경자의 「빈털터리」에서 볼 수 있다. 주인공은 남편의 경제력으로 안락한 생활을 한다. 그러나 외도를 하는 남편이 아내와의 성관계를 잘 가지려 하지 않아 외로움을 느끼다가, 아들의 과외선생님과 외도를 한다. 남편의 경제력에 만족하는 주인공에게는 부부간의 힘의 불균형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결과 중 하나인 성적 소외가 불만이 되었던 것이다. 남편의 경제력을 배경으로 외도를 하던 주인공은 남편이 아내의 자리를 빼앗아 버리자 그제서야 자신은 빈털터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집이 남편 것이며 아들도 남편의 성을 따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유권의 문서로 되어 있는 모든 것은 남편의 성을 따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재물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이름도 남편의 밑에 들어가 있음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그 주인공은 "......빈털터리...... 내가 가졌다면 믿었던 것이 허구라면, 다시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허구의 의미를 정확하게 깨닫는다면 주인공의 소극적인 외도는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 실제로도 소극적인 외도가 적극적인 것으로 바뀔 수도 있다. 가부장제 결혼이 아내를 정서적으로 또 성적으로 소외시키는 것을 견디다 못해 외도를 하였다가, 이를 발견한 남편이 격분하여 구타하고 학대하면 아내는 가부장제 결혼에서의 남녀의 힘의 불균형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남편의 외도는 용서받을 수 있는 실수로 인정되지만, 아내의 외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낙인찍히는 사실을 직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아내는 죽을 죄를 지었다면 숨죽이고 살 수도 있지만, 가부장제 결혼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도전받는 가부장제

그리하여 가부장으로부터 받는 혜택이 상대적으로 적은 저소득층의 아내들은 외도로 인해 가출하는 경우가 많다. 맞벌이를 해오던 저소득층의 기혼여성의 입장에서 남편의 성역할 수행이, 즉 남편의 권위의 행사로서의 학대가 싫을 때, 비교적 쉽게-남편의 수입이 큰 상류층의 아내나 중산층의 아내와는 달리-남편의 수입을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의 외도를 금기시하는 가부장제 가치관으로 피해를 보는 남성은 저소득층의 남성들이 되고 만다. 가부장제는 소속한 계층이 무엇이든 직업이 무엇이든 무릇 남성은 가정이라는 왕국의 왕이라고 가르쳤다. 나아가 가부장제는 아내의 외도를 모든 계층의 남성이 가지고 있는 '왕으로서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행위로 규정하여 용서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아내의 외도를 용서하지 못할 경우 그결과는 무엇인가. 상류층이나 중산층의 경우처럼 남편의 혜택을 많이 보는 아내들은 쉽게 이혼하려 하지도 않지만, 만일 헤어진다 해도 좋은 조건의 남성들이 새아내를 만나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다. 그러나 저소득층에서 아내가 가출할 경우 남편은 '신하 없는' 허울좋은 왕이 되는 것으로 끝나기 쉽다. 수입이 적은 저소득층의 남성이 새 아내를 맞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가 자녀를 두고 가출하면 남성은 자녀를 돌보기 위하여 가사노동까지 담당해야만 한다. 가부장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일, 즉 아내의 외도를 용서하지 않는 일이 가부장의 존재기반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마는 것이다.

이런 사회현상이 널리 퍼져 간다는 증거로는 '부자가정보호'라는 국가의 사업이 1995년 2월부터 시행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사업의 목적은 '사회의 정서적·경제적 지원을 통하여 어머니 없는 가정의 자녀를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가정 및 지역환경 조성'이고, 그 대상은 '어머니 없거나 있어도 가사노동 능력이 없어 실제적 가계운영을 아버지가 담당하는 가정 중 18세 미만(고등학교 재학시 20세 미만)의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저소득 부자세대'이다. 오랫동안 우리에게 익숙한 국가사업은 '모자가정보호'였다. 어떤 가정이 모자가정이 되는 이유는 대체로 가장의 죽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 사회에 '부자가정'이라는 새로운 가족형태가 등장하고 있으며, 부자가정이 되는 이유도 주부의 죽음이 아니라 주부의 가출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주부의 가출은 외도에서 출발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남편의 경제적 무능력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아내는 한눈을 팔기 쉬운데, 외도로 남편이 더욱 우습게 보여 가출할 수도 있고 아내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이 학대하자 남편이 두렵고 싫어서 가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남편의 가족에게 한 번 '시집'가면 그 집의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강제력을 가지지 못하자, 남성과 여성을 역할로 구분할 뿐만 아니라, 우월한 존재와 열등한 존재로 나누는 구분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남성의 우월은 여성의 열등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여성이 열등하기를 거부해 버리면 남성우월은 그 존재기반을 상실해 버리는 것이다. 저소득층 여성이 가정내의 열등한 존재로 남기를 거부하고 가출해 버리면, 남성은 우월함을 발휘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아내가 담당하던 가사노동이 남성의 수입으로 사기에는 너무 비싸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주부의 한 달 가사노동을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약 80만∼100만 원에 해당한다고 한다). 따라서 가정의 주인인 가장이 존재하고 일정한 수입이 있어도-집에서 노는 것으로 보이는-주부가 없으면 하나의 가정으로 기능해 나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셈이다. 이런 사실을 직시한다면 가장은 아내의 외도 앞에서 관념과 실리의 갈등을 겪게 될 것이다.

이제까지 남편의 외도에 대응하는 아내들에게 실리를 냉정하게 계산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물론 아내는 남편과는 달리 '아내의 권위'같은 것으로 고민할 필요는 없기는 하다. 그러나 이제는 남편들도 실리를 외면하고 남편의 권위만 내세우기에는 실질적인 피해가 너무 커지는 사태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외도하는 아내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상담을 청하는 외도하는 아내들은 외도하는 남편들의 대다수처럼 뻔뻔스럽지 못하다. 그들은 외도를 하면서도 잘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아내의 외도를 금기시해 온 문화의 영향이라고 하겠다. 또한 그들은 들키지 않았다 해도 남편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는 점이 괴로운 것이다. 여성들은 남성들과는 달리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감정을 숨기는 것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다(외도하는 남편들의 대다수는 외도 사실을 숨기면 불편해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드러났을 때에도 할 수 있는 한 부인한다). 남편의 외도를 겪는 아내는 피해자의 감정만 느끼면 되지만, 외도하는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성적으로 소외시켰다는 피해자의 감정과 함께 남편을 배신했다는 가해자의 감정을 느끼기에 훨씬 마음이 복잡하게 된다.

그런 아내들은 어떻게 대할 것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도하는 아내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이 아니다. 그것은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가치관의 답습밖에 안 된다. 물론 남편이 외도하니까 아내도 외도하라는 발상도 곤란하다. 외도가 '간음의 혁명'이 되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혁명의 수단이 되기에는 혁명가 자신이 받는 상처가 크기 때문이다. 아내의 외도로 가정뿐 아니라 아내 자신도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위에서 지적한 대로 아내의 외도에는 분명한 동기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작업은 아내로 하여금 외도라는 출구를 찾게 하는 가부장제 일부일처제 결혼의 내용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일이다. 분업화된 성역할에 기반을 둔 남편과 아내의 인간관계가 과연 어떤 것인가를 상세하게 분석해 보는 일이다. 그리고 아내가 원하는 남편과의 관계는 어떤 것이며, 그것은 결혼내에서 충족될 수 없는 것인지를 따져 보아야 아내의 외도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