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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를 낳는 가부장제 결혼제도



일부일처제 결혼제도의 시작

외도를 결혼제도의 그림자라고 생각해 볼 때 궁금해지는 점은 인류 역사의 어떤 시점에서 결혼이라는 것이 등장했으며 그 초기 결혼 형태에서 부부관계는 어떤 것이었나 하는 것이다. 또 외도는 어떻게 시작되었나도 알고 싶어지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과학적 연구에서 오랫동안 정석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 나타난 엥겔스의 이론이었다. 그의 이론의 특징은 공동의 한 시조모를 갖는 모계사회, 여성이 가정을 지배하는 공산주의적 세대를 가정하는 것이다.

엥겔스는 인류사회발전의 초기에 여성이 남성의 노예였다는 관념은 현대의 상태를 과거에 투사하는 불합리한 작업의 결과라고 생각하였다. 오히려 친아버지를 확실히 알 수 없는 초기의 자유로운 성관계에서는 친어머니만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 여성은 자유를 향유했을 뿐만 아니라 혈통을 계승시키는 자로서 높은 존경을 받았다고 생각하였다.

엥겔스는 인류의 가족 형태는 그 시대의 생산 양식에 따라 군혼을 거쳐 혈연 가족, 푸날루아 가족, 대우혼 가족으로 발전하면서 일부 일처제에 이르게 되었다고 보았다. 이러한 결혼 제도의 발달은 남녀간의 성교를 가질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즉, 수렵과 채취로 양식을 얻던 초기에는 어머니와 아들이 가장 손쉬운 성교 상대가 되는 무규율성교가 있었고, 그 후 부모 자식간의 성교를 배제하는 혈연 가족,형제와 자매간의 성교를 배제하는 푸날루아 가족이 있었다고 한다. 그후 모든 혈족간의 성교를 금지하여 일부일처의 대우혼 가족이 성립되었는데 그때는 목축과 경작이 도입된 시기라는 것이다.

엥겔스는 푸날루아 가족에[서 혈족간의 성교를 금지시키는 씨족이 형성되어 나왔다고 보았는데, 일부일처의 결혼이란 개념은 씨족과 씨족이 여성을 교환하는 이때부터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원시 사회에서는 씨족이나 부족이 선물을 교환하며 상호관계를 맺어 갔다고 한다. 레비 그트로스가 관찰한 트로브리드 섬에 있는 아라페쉬 족은 고구마를 주식으로 삼는데, 한 남성이 경작한 고구마는 자매의 가족에게 보내고 그 자신은 아내의 형제가 지은 고구마를 받아먹는다고 한다. 남성끼리 선물을 교환하며 유대를 다져가는 것인데 가장 좋은 선물이 여성이라고 한다. 그들은 "네가 쌓아 올린 너 자신의 어머니, 너 자신의 돼지, 너 자신의 고구마는 네가 먹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이 쌓아 올린 그들의 어머니 ,그들의 자매 ,그들의 돼지, 그들의 고구마는 네가 먹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모든 친척들간의 결혼이 금지되자 군혼은 불가능해져 가족 형태는 대우혼 가족이 되었다. 엥겔슨는 "이 단계에서 한 남자는 한 여자와 함께 생활한다. 그러나 남자에게는 계속해서 일부다처제의 권리와 때로는 불의의 행위를 할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일부다처제는 경제적 이유로 그리 흔한 현상은 아니었다. 반면에 여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경우 같이 사는 생활기간 중 정조를 엄격히 지킬 것을 요구했으며, 그들의 간통은 잔인한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부부의 인연은 쌍방이 다같이 용이하게 끊을 수 있으며, 자녀들은 종전대로 어머니에게만 속했다."고 말한다. 재미 있는 것은 엥겔스가 문란한 생식으로부터 대우혼같은 단혼으로의 이행이 여성에 의해 수행되었다고 믿는 것이다. 여성의 힘이 역사를 만들었다고 믿어 주었다는 점에서 엥겔스를 페미니스트로 보고 감사해야 할지 모르지만 여성이 그런 이행을 촉진하게 된 이유를 보면 조금 생각이 달라진다.

그는 '경제적 생활조건이 발전하여 원시 공산주의가 분해되고 인구밀도가 증가됨에 따라' 여성들이 관계해야 하는 남성들의 수도 늘고 하여 남성들과의 성관계가 여성들에게 '더욱더 굴욕적이고 억압적인 것'으로 변질되어 갔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그 퇴폐적인 문란함을 참을 수 없어서 '정조에 대한 권리, 즉 오직 한 남자와의 일시적 또는 지속적 혼인에 대한 권리를 구원의 길로 여기고, 이것을 획득하려고 더욱더 꾸준히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성들은 천부적인 '정조관념'을 가지고 있어 동물적인 무규율성교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비문화적인 인류를 참을성을 가지고 순화 시켜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 남성들은 그 동안 무엇을 했단 말인가. 엥겔에 따르면 "남자는 결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사실상 군혼의 쾌락을 버리려고는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남자가 이러한 진보를 가져올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자의 설명치고는 너무도 관념론적인 것이 하나의 문제이고 또 다른 문제는 여성이 천부적인 정조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여 19세기 남성들의 편견을 그대로 반영하고 잇다는 것이다.

나아가 설명의 모순도 생긴다. 엥겔스는 "여자에 의해서 대우혼으로의 이행이 실현된 후에야 비로소 남자들은 엄격한 일부일처제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엄격한 일부일처제'란 무엇인가? 그는 그것이 "여자 측에 한정된 것임은 두말 할 것도 없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자신들을 어떻게 하면 더 속박할 수 있을까를 꾸준히 연구해 왔다는 말이 된다. 혈연 가족에서 푸날류아 가족으로 다시 대우혼 가족으로, 마침내 한 남성에게 예속될 때까지 가족의 형태를 바꾸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왔다는 것이다. 마치 여성들은 군혼의 쾌락 따위에는 관심이 없으며 오직 한 남성에게만 속하고 싶은데 사회가 그것을 혀용하지 않아 고민을 해 왔다는 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역사를 움직일 힘을 가진 여성들은 왜 대우혼에서 남편에게도 정조관념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일가? 남편의 바람기를 너그럽게 이해해 주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군혼의 쾌락을 절대로 포기하려 하지 않는 남편을 길들이려는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 두었는데, 그만 남성에게 가족형태를 바꾸는 주도권을 빼앗긴 것인가?

엥겔스에 따르면 혼인 집단이 한 명의 남편과 한 명의 아내, 즉 일부일처로 좁혀져 갈 때,인류 사회에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 당시의 재화는 개별 가족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런 사적 방식으로 가축을 사육하고 농사를 짓자 재화는 대단히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고 한다. 엥겔스는 "당시의 가족 내에서의 분업에 따르면 식료품의 획득은 그에 필요한 노동 도구의 획득은 남편이 담당했으며, 따라서 그것에 대한 소유도 그에게 있었다. 이혼하는 경우에는, 이것들은 남편이 차지하고 아내는 자기의 가구를 차지했다."고 당시의 사회생활을 소개한다. 그리하여 남편은'새로운 노동 도구인 노예의 소유자'이기도 했다고 한다. 남성은 재화를 소유했으나 자녀를 소유하지 못하여 자녀에게 그 재산을 상속하지 못했다. 당시의 관습에 따르면 사망한 남성의 자녀는 아버지의 씨족에 속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씨족에 속했다. 그리하여 가축 등 재산의 소유자인 남성이 사망한 후에 그의 재산은"우선 그의 형제 자매들과 그의 자매의 자녀들에게 넘어 가든가 그의 어머니 편 자매의 자손들에게 넘어가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것이다.

부계제의 승리

재산이 증대하자 남편의 지위는 높아 갔고, 강화된 지위를 이용하여 가족 형태를 자신에게 우리하게 변화시키려 하게 되었다고 한다. 모계지만 일부일처인 대우혼은 친어머니뿐 아니라 친아버지도 확인할 수 있어서,. 남성들은 '전통적인 상속제도를 자기의 자녀들을 위해 폐지하려는 경향'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려면 '모권은 폐지되어야'텖고 결국 '폐지되었다'. 이제는 부계에 의해 혈통을 결정하고 부계에 따라 상속하게 된 것이다. 인류 초기부터 모계의 대우혼에 이르기까지 고결한 '정조관념'으로 결혼의 역사에서 주도권을 잡아온 여성들은 남성들의 소유욕의 연장인 '상속에의 욕구'에 의해 마지막 주도권을 빼앗긴 것이다. 엥겔스는 이것이 무혈혁명이며 여성의'세계사적 패배'라고 말하지만 ,여성들이 순순히 주도권을 내준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 않다. 이 세계사적 패배로 "남자는 가정에서도 지배권을 장악하게 되어 여자는 자기의 존귀한 지위를 상실하고 노비로, 남자의 정욕의 노예로, 순전히 산아도구로 전락했다."고 엥겔스는 말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성립된 것은 '남성 독재의 최초의 산물'인 가부장제 가족이라고 한다. 이것은 대우혼 가족의 여성 중심적인 일부일처제와 남편의 지배를 따르는 일부일처제 사이의 중간 형태이다. 이때 결혼은 가부장의 권력을 확립하는 수단이었다. 엥겔스 자신의 이론의 근거로 삼은 인류학자 모르간의 설명에 따르면 가부장제 가족의 생활이란 "일정한 수의 자유민이 토지를 소유하고 가축군을 돌보기 위해서 가부장의 권력하에 가족으로 조직되는 것으로....이 가부장은 일부다처제 생활을 하며.....비자유민은 아내와 자식을 거느리고 일정한 구역에서 가축을 돌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엥겔스는 문명 개시의 표식이라고 본 일부일처제 가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남편의 지배에 따른 것으로서 아버지의 혈통이 확실한 아이를 낳자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혈통이 확실해야 할 필요성은 아이들이 후에 직계 상속인으로서 아버지의 재산을 소유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족제도는 대우혼과는 달리 혼인 유대가 훨씬 더 공고하다. 따라서 이제는 어느 편에서나 마음대로 이 유대를 끊을 수 없게 된다. 이제는 원칙적으로 남편만이 이 유대를 끊고 자기 아내를 버릴 수 있다. 남편은 이 단계에서도 정조를 지키지 않을 권리를 적어도 관습상 보장받고 있으며 또 사회가 한층 더 발전함에 따라서 그 권리는 더욱 확대된다. "남편이 '정조를 지키지 않을 권리'라는 것은 <나폴레옹 법전>에 명시되어 있는데, 남편이 외도 상대를 집안으로 끌어들이지 않는 한 남편에게 외도할 권리를 주었던 것이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엥겔스는 남편들이 그런 권리를 그토록 열렬히 추구하는 근거를 군혼시절에서 찾고 있다. 공동체 안에 있는 모든 여성들과 자유롭게 성관계를 가질 수 있었던 군혼시절의 달콤한 쾌락을 남성들은 도저히 잊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동일한 자유를 누렸던 아내들은 '지난날의 성생활 습관을 잊지 못하여'남편 이외의 남성과 자유로운 성관계를 가지면 처벌을 받게 되고 말았다고 한다(엥겔스는 이런 여성에 대한 염려를 별로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왜냐하면 결혼의 변천사를 주도 할만큼 여성들의 정조 관념이 강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말하자면 성에 관한 한 남성들은 군혼시대에 고착되어 있고 여성들만 일부일처 시대로 진보한 셈이 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여성이 그렇게 쉽게 진보할 수는 없었기에 금지와 가혹한 처벌로도 여성의 외도를 근절할 수는 없었던 듯하다. 남편들에게 외도의 권리를 보장해 준 <나폴레옹 법전>은 아내의 외도를 염두에 두고 "혼인 중에 잉태한 아이의 아버지는 곧 남편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이 원하지 않은 부계의 일부 일처제

엥겔스도 부계의 일부일처제가 여성이 원한 결혼 형태가 아님을 인정하고 있다. 그는 "단혼은 결코 남녀간의 합의에 이한 결합으로서 역사에 나타난 것이 아니다. 더구나 합의의 최고 형태로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이다. 그것은 한 성에 의한 다른 성의 압제로서 과서 어느 시대에서도 알지 못했던 양성간의 모순의 선언으로서 나타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대우혼까지의 이행은 여성들이 남성들을 유도하여 이루어진 것이나, 대우혼에서 가부장적 일부일처제로의 이행은 남성들의 강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엥겔스가 설명하는 동기에서도 차이가 난다. 여성들의 동기는 정조관념이었다. 그러나 남성들의 동기는 타산적이었다. "일부일처제는 결코 개인적 성애의 소산이 아니었다. 그것은 성애와는 절대로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왜냐하면 혼인은 종전 그대로 어디까지나 타산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부일처제는 자연적 조건이 아니라 경제적 조건에 기초한, 즉 원시적 자연발생적 공동소유에 대한 사적 소유의 승리를 기초로 한 최초의 가족형태였다. 가족내에서의 남편의 지배와 자기의 재산을 상속해야 할 확실한 자기의 자식을 보자는 것-이것이 '고대인이' 공공연히 선포한 단혼의 유일한 목적이었다."고 엥겔스는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엥겔스는 중요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가부장적 일부일처제는 '개인적 성애의 소산'이 아니라는 점이다. 바로 그 점이 외도를 낳았던 것이다. 따라서 엥겔스는 성애에 기초를 두지 않은 초기의 일부일처제 결혼제도와 매춘-외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서로 '불가분의 대립물'이며 '동일한 사회질서의 양극'이라고 보았다. 그는 가부장적 일부일처제 안에는 외도로 '자신의 존재를 즐겁게 하고 있는 남편의 곁에는 버림받은 아내가 있는'모순이 있으나 '아내가 남편을 깨우쳐 주기 전에는' 남성은 그 모순을 모르는 모양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일부일처제 가족을 최종의 그리고 최상의 형태의 가족으로 보았다. 물론 엥겔스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일부일처제 결혼제도는 아내가 남편에게 예속되는 가부장적 일부일처제가 아니다. 그것은 부부간의 경제적 불평등이 제거되고 부부관계가 순수한 성애로 매개된 '민주적인 일부일처제'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가부장적 일부일처제내에서 부부간의 불평등이 존재한 이유는 남성들이 사유재산을 소유했기 때문이었다. 엥겔스는 그 문제는 가족이 속하는 더 큰 사회가 공산주의화하면 해결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가 지향한 공산주의 사회가 건설되면 남녀가 경제적으로 평등해질 것이어서, 개인적 성애를 매개로 하는 진정한 의미의 일부일처제가 실현되리라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엥겔스 이후의 결혼제도에 관한 연구를 보면 일부일처제의 형태가 엥겔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일찍 인류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고 있다. 부부관계가 긴밀하다거나 이혼이 어렵다거나 하는 특성을 가진 엄격한 일부일처제는 아니지만 원시시대에도 난혼이 아니라 일부일처라는 질서가 있었다는 것이다.

인류학자인 메이야수는 그의 저서 (자본주의와 가족공동체)에서 공동체(가족)란 어느 시기에라도 자연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산물이라면서 인류 초기의 자연적 공동체를 설정한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비판한다. 그는 원시사회에는 '물질적 생산세포라는 조직'과 '생명의 재생산을 위한 집단'이라는 두 가지 수준의 사회조직이 있으며, 생명의 재생산이라는 지상 명령에 의해서 공동체가 형성되고 생산양식이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다. 물질생산을 위한 '군단'은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자발성에 근거하며 가입이 자유롭지만, 생명생산을 위한 친족관계는 종신적이고 귀속적이며 신성불가침의 관계라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이 물질생산관계에서 얻게 되는 지위는 친족관계에 의해서 규정된다고 한다. 따라서 아내를 구하는 문제는 자손을 얻는 문제와 서로 다른 종류의 문제인데 자손만이 친족의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물질생산과 생명생산이 분리되어 있었으나 점차 일치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한다. 한 공동체의 생명재생산 능력은 현재 가임기에 있는 여성의 수태능력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생명의 재생산은 적절한 수의 여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었다는 것이다. 남자의 수정능력은 실제로 무제한적이고 불특정 다수의 남자가 동일한 여자에게 그 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여자의 수태능력은 수태 가능 연수에서 임신과 수유기간(많은 경우에는 문화적 금제에 의해 실제 필요한 기간보다 연장된다)을 뺀 기간에 한정되어 있다. 임신기간중에는 태아와의 공생이 여자를 대체불가능한 유일한 존재로 만들기 때문에 '여자비이동제-모거제-모계제'와 '여자이동제-부거제-부계제'가 공존하다가 효율성이란 측면과 인구학적인 고려(질병, 불임, 영아 사망 등)에 의해서 결국 여자이동제로 정착이 되었다는 것이다.

일부일처제 결혼제도가 생식(생명재생산)을 위하여 만들어진 제도라고 본 점에서는 메이야수와 엥겔스의 생각이 일치하지만, 엥겔스는 그것이 역사발전과정의 중도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여성들이 '세계사적인 패배'를 당하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고 메에야수는 인류의 생존을 위한 자구책으로서 역사의 초기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였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가부장적 일부일처제가 언제 역사에 등장했는지는 학자들이 더 연구해야 할 연구과제이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언제이든 지간에 아버지가 친자를 확인하려고 했을 때 여성의 성이 한 남성에게 예속되었다는 것을 말할 수 있고, 한 아내가 확보되었을 때 외도가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소설이기는 하지만 인류학자이기도 한 작가가 2만년 전 구석기 시대를 그린 '세상의 모든 딸들'을 보면 '고기를 지배하는 남자'의 일족과 관계를 가지기 위하여 주인공 일족에서 한 여자를 신부로 주면서 관계를 맺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게 결혼한 여자는 남편의 일족을 모욕하기 위하여 남편 이외의 남자와 성관계를 가지기도 하고 -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최초의 여성 외도일 수도 있다! - 이혼을 하는 자유와 재혼을 하는 자유도 갖는 것으로 그려진다.

배타적 성관계의 탄생

지금까지 살펴본 엥겔스의 이론과 그 이후의 이론을 종합해 보면 인류 역사에는 생존을 위해 허술한 일부일처제 결혼제도라는 틀은 일찍이 등장했으나, 배우자에 대한 소유권 그리고 이혼의 부자유 등이 차차 덧붙여지면서 그 틀이 꽉 조이는 것으로 변해 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가져온 배경으로는 엥겔스가 지적한 대로 생산수단과 생산양식의 발달로 잉여생산물의 축적과 그 축적물이 개인(남성)에 의해 사적 소유물이 되었다는 사실 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생식의 비밀을 정확하게 안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아이가 정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녀의 성적 결합에서 온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된 남성들 자신이 태어나는 아이의 친아버지임을 확인하기 위해 아내의 순결을 확보하려고 한 것도 배경이 될 것이다.

이제 가부장은 물질과 사람-아내, 자녀, 노예-모두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더욱 확실한 소유를 위하여 가부장적 일부일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배타적 성관계'가 탄생한 것이다.



사랑이 없는 결혼

엥겔스가 올바르게 지적했듯이 가부장적 결혼제도가 외도를 낳은 이유는 그 결혼이 사랑에 근거를 둔 평등한 결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성이 모든 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여성은 생존을 위해 결혼하여 남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아내에게 원한 것은 자신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배타적 성관계'를 가지며 자신에게 정통의 자손을 낳아 주는 것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최초의 분업은 자식을 생산하기 위한 남녀간의 분업이었다."라고 말했는데, 그 분업은 또 하나의 분업을 낳은 것이다.

남성은 자손을 낳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성관계를 가지고 사정을 하여 정자를 주는 것이다. 남성은 사정을 하면서 동시에 성적 쾌감을 느낀다. 두 가지는 분리되지 않는다. 그런데 한번 사정하여 아내가 임신을 하면 아내와는 1년 가량 성관계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오늘날에는 임신중에도 성관계를 가져도 괜찮다는 것이 상식화되고 있지만 과거로 갈수록 그것을 금기시했다). 자손을 만들었으니 더 이상 정자를 주지 않아도 되지만, 남편들로서는 성적 쾌락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가부장들은 그들의 성관계가 가지는 두 가지 기능을 나누어 각 기능에 대응하도록 여성의 역할을 분업화시켰는데, 그 중 한 집단이 외도를 담당하는 여성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다른 한 집단은 물론 자손을 생산하는 아내들이다. 남성들은 그들이 소유한 재산으로 두 집단의 생존을 책임질 수 있었고, 그래서 필요에 따라 둘 중 한 집단을 선택할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분업하의 분업 때문에 엥겔스는 가부장적 일부일처제와 매춘을 '불가분의 대립물'이요 '동일한 사회질서의 양극'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아내가 남편과 성애를 나누지 않을 때, 법적으로나 관습적으로나 외도가 금지되지도 않은 남편이 외도를 통해 성애를 추구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