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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를 하려면 성을 사야 하는가?


재산상의 불평등의 출현과 함께.....노예노동과 함께 임금노동도 여기저기서 나타났다......그에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것으로서, 여자 노예가 강요되어 남자에게 몸을 허락하게 되고, 그와 함께 자유민 여자가 직업적 매음에 종사하게 된다. 이리하여 군혼이 문명에 물려준 이 유산은..... 역시 양면성을 띠고 있었다. 즉, 그 한 측면은 일부일처제이고, 다른 한 측면은 난혼과 그 극단적 형태인 매음제도이다.

─ F.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기생에는 계급이 있어서 1패, 2패, 3패의 3등급으로 나누어졌었다. 1패는 왕의 어전에 나가 가무를 하는 최고급 기생이고, 2패는 각 관가나 재상 집에 출입하는 기생이요, 3패는 지금으로 치면 창기에 해당된다.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 생활과 풍속>,조풍연 해설

현재 우리 나라 남성 외도의 반 이상은 매춘이다. 과거에는 외도의 대부분이 매춘이었지만 우리 사회에서 자유연애의 풍조가 자리 잡게 되고, 여성에게도 성의 쾌락이 행복의 한 요소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자유의사로 외도상대가 되는 여성들이 늘어나 외도에서 매춘이 차지하는 비율이 조금씩 낮아지고 잇다. 그러나 아직도 매춘은 성행하고 있다.

외도와 동전의 양면 같은 매춘을 살펴보자. 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 나라 남성의 65.7%가 매춘을 해본 경험이 있으며, 조사 대상 남성 중 25.6%는 매춘을 합법화해야 한다고 했으며,55.7%는 묵인할 수밖에 없다고 답변하였다. 대부분의 남성(88.1%)이 매춘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매춘의 범위

최초의 외도는 매춘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는 쉽지 않다 <매춘의 역사>라는 방대한 연구서를 저술한 벌로 부부는 매춘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구석기 시대를 알아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알 방법이 없고, 현존하는 원시 사회들을 통해 추측을 해야 하는데 그들이 서양문명의 영향을 받기도 했으며 또 무척 다양해서 원초적인 사회를 추출해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떤 동물행동학 연구장들은 일부 고등 영장류에서 매춘 행위를 관찰할 수 있다고 보고한다. 즉, 영장류의 암컷(또는 젊은 수컷)이 먹이를 얻었을 때 그 답례로 혹은 상대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매춘인지 아닌지는 동물행동학자들에게 맡겨 놓고 우리는 구석기 시대 인류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짐승을 사냥해 온 강한 남성이 고기를 나누어 줄 때, 사회가 정해 놓은 분배의 규칙을 어기고 미혼여성에게 그녀의 분수에 넘치게 크고 좋은 고깃덩어리를 주었다고 상상해 보자. 그 후 그 여성이 성적 서비스를 남몰래 제공했다고 상상해 보자. 또는 사냥을 나가기 전에 이미 성적 서비스를 제공했다면 상상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행위는 외도인 것은 확실한데 동물의 경우처럼 그 행위를 매춘이라고 봐야 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고깃덩어리가 '화대'가 아니라 '선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기혼 남성인 줄 알면서도 연애하는 미혼 여성들이 있다. 그 남성이 경제적 여유가 있어 외도 상대에게 비싼 모피코트를 선물한다면, 그것을 선물로 봐야 할 것인가 화대로 봐야 할 것인가? 이 문제 때문에 여성이 도대체 몇 명의 남성과 성관 계를 가져야 매춘인지를 규정하려는 노력이 있기도 했다. 어떤 학자는 '40명에서 60명'이라 하였고 어떤 학자는 '2만 3천명'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흔히 매춘을 '가장 오래된 직업'리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성직자, 간호사, 의사보다는 오래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벌로 부부는 말하고 있다. 이 경우 매춘이란 더 이상 선물인지 화대인지가 애매하지 않은 직업적 매춘을 말하는 것이다. 매춘을 가장 명백하게 보여 주는 부족 사회는 시에라 타라스칸 족인데 그 사회에는 현대의 콜걸과 비슷한 제도가 있다고 한다. 마을마다 어떤 부류의 성인 여성들의 이름을 알고 있어, 생각이 있는 남성이 찾아가면 심부름꾼을 시켜서 그 여성들을 불러오고 손님을 상대하게 한다고 한다. 이런 유곽의 단골 손님은 주로 젊은 독신 남성이나 아내가 임신 중인 기혼 남성도 꽤 있었고 화대의 대부분은 매춘 여성이 가졌다고 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매춘이 외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는 하나 모든 매춘이 외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매춘은 아내가 없어 성관계를 가질 수 없는 남성들을 위한 관행이었는데. 독신의 기분을 느끼고 싶거나 아내와의 관계에 만족하지 못한 기혼 남성들이 이용하기도 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남성이 결혼할 때까지 성관계를 갖지 않을 수 없는가 하는 복잡한 쟁점을 논외로 하고 볼 때, 매춘으로 성욕을 해소하려는 결혼 안 한 또는 못 한 남성들은 어느 사회에나 있었던 만큼 거의 모든 사회에 존재했던 것이다.



성적 만족을 위한 매춘

일부다처제 사회일수록 결혼을 못 한 남성이 많았는데, 그 이유는 돈 많고 권력 있는 남성이 젊고 예쁜 여성을 여러 명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다처제가 불법인.미국 같은 사회에서도 '실질적 일부다처'가 가능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그 것은 동시에는 아니지만 한 남성이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며 일생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것이 다른 남성들로부터 결혼할 기회를 빼앗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실례로 유명한 토크쇼 진행자 자니 카슨은 네 번 결혼했는데 매번 지난번 아내보다 적어도 여섯 살 어린 여성과 혈혼하여-그는 연속적 일부다처를 즐기는 대가로 이혼할 때마다 엄청난 위자료를 지불했다-네번째 신분는 그보다 무려 스물 네 살이나 어린 여성이어E다. 다시 말해서 그런 부유한 남성들 때문에 일부 남성들은 매춘으로 밖에 성욕을 해결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래도 결핍 동기로 매춘을 한 경우다. 문제는 외도-매춘이다. 매춘을 객관적인 결핍 동기를 가진 독신 남성에게만 허용한 사회는 없었다. 그러면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아내가 있는 기혼 남성들은 왜 매춘을 했을까?

과거를 법전을 통해 추적해 보면--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법전은 기원전 1800년경 에쉬눈나 마을의 법전이고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것은 기원전 1700년경의 함무라비 법전이다.-그 당시 결혼의 목적이란 오직 아이를 낳는 데에 있었고 부부간의 애정은 관심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앗 수 있다. 당시의 법이 유산시킨 아내를 처벌하고 중절을 규제했다는 것을 볼 때 앞서 살펴본 대로 가부장제 결혼 제도 내에서 아내의 일차적 역할이란 아이 낳는 도구로서의 역할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내들에게는 자신의 몸을 통제할 자유가 없었던 것이다. 계속되는 임신과 출산으로 몸이 허약해지고 심지어 생명을 잃게 될지라도, 아내들은 아이 낳는 일을 피하거나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당연히 아내들은 자신의 성성을 인정하여 성적 쾌락을 추구한다든지 남편의 성적 상대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든지 할 여유를 별로 갖지 못했다. 그리고 사회가 그런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사회는 그런 일을 금지하고 좌절시키려 했다.

이에 가부장들은 성에 관한 여성의 일을 분업화시킨 것이다. 아내에게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역할을 맡기고, 매춘 여성에게 그들의 성적 쾌락을 만족시켜 주는 역할을 맡겼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가부장제 결혼제도는 기혼 남성들이 독신 남성과는 다른 의미의 성적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도록 결혼을 구조화시켜 놓은 것이다. 아내란 여성을 비성적 존재로 만들어 버렸으니 그들과의 성관계는 생식을 위한 의무일 뿐이었고 그들은 당연히 다시 성적인 여성을 찾아야만 했던 것이다. 조선시대 양만의 가옥 구조를 보면 아내가 거하는 안채와 남편이 거하는 사랑 사이에는 중문이 있어, 가정에서 남편이 중문을 지나 안채로 가는 일은 집안 어른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이어서 자유롭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중문 출입은 주로 자손을 만들 수 있는 날을 택일하여 합방할 때 행해진 것이다. 반면에 남편이 대문을 나가 기생을 찾아가는 일은 집안 어른의 시선을 벗어나는 일이므로 마음이 내킬 때 자유롭게 주어진 것이다. 이 관습에서도 분업화된 여성의 성성이 어떻게 다르게 대우받는지를 알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도 그런 이분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1994년에 보사부 주최로 열린 '윤락행위등방지법에 관한 공청회'에서 재미있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한 남성이 남성들이 결혼하고도 매춘여성을 찾아가는 이유는 아내들의 성기교가 부족하기 때문이니, 매매춘을 줄이려면 주부들에게 성기교를 가르쳐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한 것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이다. 어떤 사회에서는 적령기의 여자가 결혼을 하지 못했을 때 결혼에 대한 초보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임시로 매춘여성이 되는 것을 인정했다고 한다. 그런 주장을 한 남성이 자신의 아내가 -아내가 부부의 성생활을 진일보시키기 위해 매춘을 통해 성기교를 배우려는 열망을 가진다 해도- 잠시 매춘업에 종사할 것에 동의하리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 부족처럼 그렇게 여성의 성에대해 열린 사회는 극히 드문 것이다. 성생활을 즐기는 데 있어 성기교가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내에게 자녀 출산의 역만을 맡기는 한 또는-적은 수의 자녀를 가지는 오늘날- 그런 관념의 지배를 받는 한, 아내는 성기교를 배워 사용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성기교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내가 성적 상대의 역할도 맡아 주기 바란다면 그 사실을 알릴 사람은 사회가 아니라 남편이다 그리고 아내가 성기교를 늘리도록 노력을 함께 해야 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남편들인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매춘이 성교육으로 사용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떤 부족에서는 매춘여성 -과부나 나이 먹은 미혼여성-으로 하여금 젊은 남자들에게 성교의 비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부족의 경우처럼 공인된 성교육은 아니지만 간접적이고 사적인 성교육도 있었다. 중세 유럽의 유명한 고급 매춘여성은 고객 중 하나인 프랑스 귀족에게 '여자를 기쁘게 하는 여러 가지 비술'을 가르쳐 준 다음 그 아내를 만나 푸짐한 선물을 받으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에서는 외도하는 남편의 마음-또는 몸을?-을 잡으려고 매춘여성을 찾아가 성기교를 가르쳐달라고 사정하는 본부인의 이야기가 나온다(이 이야기는 도덕적인 여성으로 칭송받는 정숙한 부인과 가장 부도덕한 여성으로 지탄받는 매춘여성이 평등하게 만날 수 있는 공통분모를 보여 주었다는 점에 그 미덕이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여성 자신의 성욕이 아니라 남성의 성욕이 중심이라는 것이다.)그리고 필자의 전화상담사례 중에도 성기교가 굉장한 여성-그녀는 매춘 여성이 아니다.-과 외도하는 남편 덕에 그전에는 못 느끼던 오르가슴을 여러 번 느끼게 되었다는 30대 초반의 내담자가 있었다. 그 내담자는 남편의 외도 상대에 대한 성적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스스로 책을 보며 성기교를 개발할 수 있다는 생각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하였다. 아직도 정실부인의 정체성과 성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 -과거에는 정실부인과 대립되는 매춘 여성만이 가졌던 태도-를 양립시키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제3장에서 예를 들었던 미국 중년부부의 경우처럼 아내가 성적 주도권을 잡을 때 성욕이 식어 버리는 남편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남성이 매춘이 부부의 성교육을 위한 것인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 남편들은 자녀 출산을 위한 성을 제외하고도 또다시 성을 이분화 시켜 아내와의 성은 '아내의 쾌락을 위한 봉사'고 외도의 성은 '남편의 쾌락을 위한 여흥'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처음에는 성을 생식과 쾌락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더니, 생식의 비율이 적어지다 쾌락을 다시 아내의 쾌락과 남편의 쾌락으로 나누고 있는 것이다. 이 구도에 꼭 들어 맞는 예를 전화상담을 하면서 듣게 되었다. 외도를 하여 가출한 남편이 가끔 집으로 들어와 아내에게 성적 만족을 느낄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그 남편은 합법적인 아내에게'성적인 봉사'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담자는 성적 욕구를 느끼기는 하지만 약간은 굴욕적인 남편이 제안을 어떻게 맞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되어 상담을 청했다고 했다. 문제는 아직도 아내의 쾌락과 남편의 쾌락이 일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외도의 산물을 배우자와 나눈다고 해도 매춘을 성교육의 현장 실습쯤으로 여긴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부부가 함께 보며 성에 관해 배울 수 있는 좋은 책들이 나오고 있다. 이제는 부부 사이에서도 성을 일상적인 의무행위로 여기지 않고 일상을 탈출할 수 있는 행위로 보고자 하는 부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즉, 성관계를 성욕을 배설하는 동물적인 행위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총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인격적인 차원의 행위로 보고자 하는 시도가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매춘처럼 감정의 교류나인격의 교류 없이 하는 성 관계와는 질적으로 다른 성관계가 가능해져 가는 것인데, 그런 관계의 깊은 맛을 알게 될 때 남편의 쾌락과 아내의 쾌락이 일치하게 될 것이다.

중세의 유명한 신학자인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매춘을 궁전 안의 하수구에 비유하여 하수구를 제거해 버리면 세상은 여러 가지 성적 죄업으로 가득 차 버릴 것이니 금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했다. 중세를 그린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중세기의 유럽의 도시에는 하수도가 무척 발달해 있었다. 지하의 도시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큰 하수관이 있었기에 그런 비유를 들었던 것 같다.

아퀴나스가 비유로 썼던 오물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면, 보고 싶지 않은 더러운 것들은 땅 밑으로 다 묻어 버리고 지상에서 우아하게 살 수 있던 편리한 시절은 이제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쓰레기를 더 이상 묻어 버리기만 할 수 없어 쓰레기 종량제를 실시할 수밖에 없이 되었듯이, 오물 아닌 것과 오물을 엄격하게 분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보고 싶지 않던 '더러운' 성욕을 하수구에 밀어 넣으며 그런 것은 하수구에 사는 특수한 종이나 알지 정숙한 아내들은 모른다는 듯이 살 수 있던 '우아한'시기는 지났다고 하겠다. 프로이트를 선두로 성과학자들이 아내가 되는 일반여성의 종과 매춘여성의 종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모른 척하던 성욕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을 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고 만 셈이다.

성적 존재로서의 여성

그런데 성과학의 보급은 결혼내의 관계뿐 아니라 외도의 유형도 변화시키고 있다. 성을 파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 일반인들의 성 지식이 늘어가면서 나타나는 현상은 ,매춘 여성이 아닌 일반 여성이 성성을 가진 성적 존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결혼을 하여 정통의 삶을 살 수 있었던 여성들은 결혼 전에 남성과 성적인 접촉은 일체 하지 않았고 또 결혼한 여성들도 외간 남자와 성적 관계를 맺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과 관계없이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여성들은-강간을 하지 않는 한-매춘여성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20세기의 성과학자들이 여성의 성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험실에서 남녀가 실제로 성관계 갖는 것을 관찰하기도 한 성과학자 매스터스와 존슨은 여성이 한 번의 성관계에서 여러 번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남성은 사정할 때 음경에서만 오르가슴을 느끼지만 여성은 음핵에서도 또 질에서도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알려 주었다. 성과학자들이 발견한 여성은 비 성적 존재가 아니라 성적 쾌감을 남성보다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대단한 성적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 성과학적 지식이 여러 가지 경로로 일반에게 알려지면서 이제는 여성들이 결혼과 상관없이 성에 대해 알고 싶다는 호기심도 느끼게 되었고 성적 쾌락을 맛보겠다는 권리의식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고등교육을 받는 여성들이 늘어감에 따라(대학졸업 학위 취득자 중 여성 비율이 1980년에는 31.8% 였는데 1994년에는 40.6%가 되었다) 많은 여성들이 매춘 이외의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되어 남편 없이도 살 수 있는 경제적 독립도 이루어 가고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대부분의 여성에게 생존을 위한 절대명령 같았던 결혼의 의미가 점점 희석되고 있다. 결혼이 여성에게 만들던 성의 벽이 점점 얕아져서 그 벽을 넘나드는 여성이 늘고 있는 것이다. 기혼여성의 외도 뿐 아니라 결혼한 남성을 연애 상대로 여기는 여성이 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외도상대에서 매춘여성이 아닌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늘고 있다.

예를 들어 '광주 여성이 전화'의 1994년 통계를 보면 외도상대 200명 중 31명만이 유흥업소 여성이었다. 백분율로 볼 때 그 것은 15.5%에 불과한데 그것은 놀랍게도 적은 비율이다. 나머지 169명이 누구인가를 보면 독신여성(과부, 이혼녀)이 35명(17.5%), 직장 내 미혼 여성이 32명(16%), 유부녀 28명(14%),미혼여성 13명(6.5%), 그리고 무응답이 61명(30.5%)이다. 무응답 61명 모두 유흥업소 여성이라고 보아도 성을 상품으로 파는 여성들은 92명으로50%를 넘지 못한다.

매우 한정된 통계이기는 하지만 과거에 외도 상대의 거의 100%를 차지하던 매춘여성을 대신하여 일반여성들이 그 자리를 메워 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적자 생산을 담당하는 합법적 아내의 조수처럼 성적 서비스를 제공해 온 매춘여성의 역할을, 그 자신 합법적 결혼을 할 수 있는 일반여성이 담당하게 되어 간다는 것이다. '현모양처가 될 요조숙녀'와 ' 아내가 될 수 없는 매춘부'라는 이분법 대신'성적 매력이 없어진 여자(아내)'와 '성적 매력이 있는 여자'라는 이분법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아내의 쾌락을 위한 봉사'와'남편의 쾌락을 위한 여흥'에 대응되는 이분법이다.<성의 변증법>의 저자 슐라미스 화이어스톤은 이런 이분법이 가지를 치며 계속 만들어지는 이유를 여성들이 인류 사회의 주인 자리를 차지해온 남성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데서 찾고 있다. 그런데 직장 내 미혼여성들의 상담사례들은 특히 이런 이분법적 구도에 잘 들어맞는다.

결혼한 남성들이 직장에서 매일 만나는 미혼여성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며 자신의 결혼생활이 얼마나 불행한가를 호소하여 동정심을 자극하는 경우들이 있는 것이다. 그들이 묘사하는 아내는 성적매력이 없는 여자이다.

한 기업의 사보가 기혼남녀 100명을 대상으로 결혼생활에 대한 조사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기혼남성들에게 는 '언제 아내가 성적매력이 없다고 느끼는가'를 묻고 기혼여성들에게는 '언제 남편이 타인처럼 느껴지는가'를 물었다고 한다. 남편들의 대답 1위는 '자신을 꾸미는 것에 무관심한 아내를 볼 때 '(10.3%)였고, 아내들의 대답 1위는 '자신의 의사를 무시할 때'(10.8%)였다. 남편에 대한 질문과 아내에 대한 질문이 다르다는 것은 이조사가 그런 이분법을 전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편들 중에는 심지어 아내가 죽을병에 걸려 성생활을 할 수 없다고 호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미혼여성을 유혹하고 싶어하는 기혼남성들의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는 위 기업의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나듯이 '부엌데기 같은 아내'라는 이미지가 아직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년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라는 이미지와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애인 같은 아내' 라는 이미지가 새롭게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합법적 아내는 가정에 갇혀 살림밖에 모르며 사는 성적 매력이라고는 없는 존재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물론 쾌락을 추구하는 미혼여성들이 유흥의 대상으로 유부남을 선호하여 먼저 유혹하거나 또는 기혼남성의 유혹에 기꺼이 응하는 경우도 있다.

낮아지는 결혼의 벽

그런데 일반 여성들이 남성의 외도상대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며 또 그런 일의 결과이기도 한 것은 '결혼에 대한 존경심의 약화'이다. 외도상대가 매춘여성인 경우 남편의 외도가 이혼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외도로 에이즈 같은 심한 성병을 옮기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혼에 타격을 주기는 해도 결혼을 파괴하지는 않는 것이다. 하지만 매춘여성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혼한 경우도 있기는 하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그리스 사회의 최고급 매춘계층인 헤타이라에 속한 아스파시아와 사랑에 빠져 이혼을 했다고 한다. 당시 그리스 사회는 아스파시아를 끝까지 정실부인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페리클레스는 죽을 때까지 그녀를 사랑했다고 한다. 물론 헤타이 라는 교양을 갖춘 품위 있는 매춘여성들이었으며 우리 나라에도 황진이같이 멋진 매춘여성이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더 이상 그런 식의 매춘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를 이해하고 지을 줄 아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어리냐가 화대를 결정하는 것이다.

외도상대가 매춘여성에서 일반여성으로 옮겨가면서 화대가 아닌 '선물' 또는 '유흥비 부담'이 주거래가 된다. 기혼남성이 외도상대가 되는 여성에게 선물을 주거나 유흥비를 부담하는 경우가 물론 많으나 때로는 외도상대인 여성이 돈을 빌려주거나 유흥비를 부담하는 경우도 있다. 상담사례들을 근거로 대충 나누어 본다면 외도상대가 미혼여성일 경우에는 남성이 유흥비를 부담하는 편이고 외도상대가 기혼여성일 경우에는 여성도 부담한다. 미혼여성이 돈을 빌려준다든가 하는 식으로 돈까지 쓰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행동할 때는 대개 기혼남성이 이혼하기를 기대하는 경우이다. 미혼여성의 입장에서는 '몸도 주고 마음도 주고 , 게다가 돈도 주고'인 것이다. 매춘여성은 몸만 주고 그대가인 화대를 받는데 , 일반여성은 잘못하면 사랑을 죽고 그것에 대응하는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는 대가'(?)까지 치르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자신과 결혼하기 위하여 기혼남성이 이혼을 하리라고 막연히 믿고 기다리던 미혼여성이 상담을 청해 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여성을 보호해 주는 장치는 거의 없다. 우선 상대가 결혼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상대가 '혼인을 빙자한 간음죄'를 범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 외에도 적용시킬 수 있는 법조항은 없으며 관습도 외도상대가 된 여성을 편들지는 않는다.

사랑으로 결혼의 벽을 무너뜨리고 결합하는 경도 물론 있다. 그러나 미국 통계를 보면 외도하는 남편의 75%내지 85%가 이혼을 원치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외도로 이혼한 소수의 남편 중80%가 이혼을 후회하고 재결합을 소망한다고 한다. 그것은 외도의 이유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외도를 다룬 한 책에서는 미국 남편들이 외도하는 이유들로 '중년의 위기, 지루한 성생활 ,단순한 충동, 탈선 욕망, 가정이 주는 경제적 압박, (아내와의) 친밀감으로부터의 도피, 우울증, 복수심, 아내의 무관심, 바람둥이 기질'등을 꼽고 있다.

그리고 제1장에서 언급한 글래스 교수의 조사내용을 보면 조사 대상들에게 다음과 같은 것들이 외도의 동기였는지를 묻고 있다. 예들은 "(1)재미를 위하여, (2)지적인 것을 나누기 위하여,(3)낭만적인 경험을 하기 위하여,(4)젊게 느끼기 위하여,(5)성적 결핍이나 좌절을 완화하기 위하여,(6)자신의 문제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7) 성적 관계를 즐기기 위하여,(8)호기심 때문에 또는 성적 실험을 하기 위하여,(9)함께 있어 줄 사람을 찾아,(10)신나는 성을 위하여,(11)사랑과 애정을 얻기 위하여,(12)자신감과 자존감을 높이기 위하여,(13)새로움과 변화를 경험하기 위하여, (14)존경받고자, (15)사랑에 빠져서, (16)배우자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17)작업에서 승진하기 위하여"들이다. 이 모든 외도의 이유들을 살펴볼 때 아내와 헤어지는 것이 답인 문제는 드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외도상대가 되는 여성들이 모두 그 상대와의 결혼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결혼 밖의 성을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결혼하면 가지게 될 남편과의 성관계는 신나지 않는 것일테니 신나는 성을 즐기려면 결혼 밖에서 즐겨야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결혼 밖에서 쾌락을 추구할 때 상대로서는 미혼남성보다 경제적 여유도 있고 성적으로도 세련된 기혼남성을 낫게 평가하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은 '결혼 안의 재미없는 성'과 '결혼 밖의 쾌락'을 구별하는 (가부장제의 남성들이 오랫동안 해온)기존의 이분법을 따르는 것이 되며, (가부장에의 남성들처럼) 결혼 밖-미혼여성의 경우 결혼 전-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을 쾌락의 관점에서 보면 결혼은 대단치 않은 것이 되도 만다. 여성의 성성을 하수구 속으로 던져버리고는 격리된 매춘여성이라는 분업화된 집단에게만 담당하게 했던 가부장제는, 이제 여성의 성성이 지하로부터 지상으로 올라와 모두의 것이 되면서 가부장제 결혼 자체를 약화시키는 부메랑효과를 겪고 있는 것이다. 뿌린 씨앗을 거두어들이고 있는 셈인데 문제는 몹시 복잡한 열매를 거두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결혼이나 생식과 관계없이 성관계를 가지거나 성관계를 즐기는 특수집단의 여성은 누구나 매춘부로 부를 수 있었으나, 생식과 관계없이 성관계를 가져도 매춘부라 부르기 어려운 여성들이 늘어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여성들은 남성들이 정숙하다고 믿는 딸이나 누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외된 여성과 매춘

외도상대가 되는 일반여성들 이 늘고 있다고 매서 매춘여성의 수가 줄어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매춘을 하게 되는 여성들은 도대체 누구인가."과거에는 처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결혼을 거절당한 여성이나 어떤 이유로 가정이나 남편, 부양해 줄 남자 친척이 없는 여성이 자립하기 위해서 매춘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매춘의 역사」의 저자는 쓰고 있다.

우리 나라의 역사를 보면 두 가지 이유를 덧붙여야 하는데, 하나는 계급 때문-조선시대 기생의 신분은 천인이었다-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의 부양을 위해서이다. 여성 자신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매춘을 해야 했던 것이다. 일제시대에 가난한 가정에서 딸을 기생을 만들기 위하여 평양 기생 학교에 보냈다는 이야기나 60,70년대에 남자 형제의 교육을 위하여 매춘으로 돈을 번 여성들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도 넓게 보면 부양해 줄 남자 친척-대개 아버지-이 없는 경우이다. 보호작가 결혼할 때까지 부양해 주지 못하고 또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교육을 받게 해주지 못하는 경우인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가 여성에게 열어 놓고 있는 문-결혼이나 직업- 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이 매춘여성이 된 것이다.

우리 사회의 경제가 어느 정도 발전한 지금은 본인의 생존이나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매춘을 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적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 오늘날의 매춘여성은 특별히 성적인 존재들인가? "매춘은 없다"라는 책에서 하은경 씨는 90년대에 여성들이 매춘에 입문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는데, 결국 신세대 매춘여성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 역시 이 사회에서 소외된 여성임을 밝혀 준다. 그들은 대학입시 위주의 중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낙오하고 그것에 반항하다가 갈 길을 잃어버린 여성들인 것이다. 사화가 구조적으로 소외된 여성집단을 만들어 내면, 그 여성들에게 남는 마지막 길이 매춘이기 쉽다. 그러므로 어떤 방식으로든 소외된 여성이 있는 한 매춘여성은 근절될 수 없는 것이며 매춘 여성이 존재하는 한 남성성들의 외도상대는 확보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매춘 여성은 특별히 성욕이 강한 여성이라고 보는 신화이다. 앞부분에서 지적했듯이 매춘을 직업으로 갖는 여성들은 생존 조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물론 70년대에는 납치나 인신매매로 매춘을 강요당한 여성들도 있었고, 90년대에는 돈을 쉽게 벌고자 매춘을 하는 여성들이 있기는 하다).매춘 이외의 대안이 별로 없는 여성들이 성을 파는 행위를 한다고 해서 성욕이 강하다고 말하는 것은 결과론적인 분석밖에 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성욕이 강해서 매춘을 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여성이라고 말하려면, 매춘보다 나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데도 매춘을 한다는 것과 같은 증거를 제시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세계적으로 매매춘에 관한 입법유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금지주의로 매매춘을 범죄로 간주하여 처벌하는 것이다. 둘째는 규제주의로 경찰과 행정관청이 매매춘을 허가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통제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은 특정지역에 있는 사창가 , 매춘 자의 등록카드와 그들에 대한 의료감시 등이다. 셋째는 폐지주의로 매매춘에 대한 규제를 폐지하여 매매춘을 자유활동으로 허가하는 것이다. UN은 <인신매매금지 및 매매춘 행위에 의한 착취 금지에 관한 협약.>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폐지주의를 기본으로 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폐지주의 입장이란 매매춘을 조장 착취하는 행위와 호객행위와 가시적 방법에 의한 매매춘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금지주의를 채택하고 있어서 결혼한 남성이 매춘 여성과 외도를 하면, 법적으로는 매춘죄와 간통죄를 동시에 범하는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