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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그 아름다운 모순!

이 세상의 모든 인간관계중 한 여인과 그 여인의 몸속에서 자라는 아이와의 관계보다 더 깊은 것은 없으리라. 그런데 왜 아름다워야 할 임신이 수많은 여인들에게 참지못할 헛구역질과 입덧으로 고통을 주어야만 하는가. 창세기 제3장 16절에 나와 있듯이 하느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은 이브를 벌주시기 위해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라고 해서인가.

다윈 의학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하버드대학 생물학과의 헤이그박사에 따르면 임신 중의 어머니와 태아는 결코 잘 조화된 사랑과 협동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임신이란 오히려 엄마와 태아 간에 서로 뺏고 뺏기지 않으려는 어찌보면 다분히 삭막한 인생살이의 연장이다. 수정란이 약 5일간 나팔관을 따라 내려오며 분화된 후 자궁 내벽을 뚫고 들어가 자리를 잡는 과정이 이른바 착상인데 이는 어머니가 자궁벽 어딘가에 미리 마련해둔 포근한 보금자리에 태아를 맞아 들이도록 서로 잘 조화된 과정이 아니라 영양배엽이라 불리는 태아 세포들이 실로 무자비할 정도로 산모의 몸을 파고드는 사뭇 일방적인 과정이다.

일단 자궁벽을 뚫은 태아는 곧바로 hCG, 즉 인간 융모성 생식선자극 호르몬을 산모의 피속으로 분비한다. hCG는 산모의 황체형성 호르몬 수용체와 결합해 난소로 하여금 프로제스테론을 계속 분비하게 만들어 생리주기를 억제하고 착상된 태아가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잘 알려진 임신중절 말고도 임신 초기에 약 78%의 수정란들이 착상에 실패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처럼 실패한 배아들의 대부분이 비정상적인 염색체를 지니고 있는 점으로 보아 이같은 조기유산은 산모가 바람직하지 못한 태아를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기제인 듯싶다. 따라서 태아로서는 지속적으로 hCG를 만들어 분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태아는 또 hPL, 즉 인간 태반 젖분비 자극 호르몬을 분비하여 엄마의 인슐린 기능을 방해함으로써 혈당량을 증가시켜 자기에게 더 많은 당분을 공급하도록 만든다. 산모는 이에 대항하여 더 많은 인슐린을 분비하게 되는데 이런 경쟁으로 인해 임산부의 몸에는 정상인의 천배가 넘는 hPL이 흐른다. 많은 임산부들이 당뇨 외에도 고혈압으로 고통을 겪는다. 고혈압이 심해지면 신장이 손상되어 소변에 단백질이 섞여 나오는 이른바 전자간증(preeclampsia)을 앓기도 한다. 이는 자궁벽을 뚫고 들어온 태아 세포들이 자궁의 동맥근육과 신경들을 파괴하여 산모로 하여금 태반으로 흐르는 혈류를 조절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산모와 태아 간의 이같은 갈등은 궁극적으로 유전자들 간의 갈등이다. 태아는 임산부, 즉 어머니로부터 자기 유전자의 반을 물려 받았지만 나머지 반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이다. 따라서 임산부는 자신과 아무런 유전적 연관도 없는 남편의 유전자들로 몸의 반을 채우고 침입한 태아와 어쩔 수 없는 갈등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다.

최재천/서울대 생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