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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막

결혼을 앞둔 여성에게 처녀막이란 재산과도 같다고 믿던 시대가 있었다. 한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하는 순간 ‘결백’함으로써 한 남자만 섬길 것을 다짐하는 숭고한 의미였다고 하겠다. 한국적이면서 신성하다고도 생각돼 왔다. 물론 처녀막 하나 가지고 한 여성의 전부를 파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것’이 순수하다고 생각돼 온 것은 사실이다.

5,6년전까지만 해도 처녀막 재생술에 대한 문의가 많았다. 필자도 한해에 10여건씩 시술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 성형외과의 들에게 물어봐도 ‘문의’ 자체가 없다고 한다. 신출내기 의사들은 아예 시술 경험이 없다. 불과 몇년 사이에 생긴 엄청난 변화다.

여성들이 대범 솔직해져서인가. 남성들이 관대해진 것인가. 처녀막 재생수술은 상대를 속이는 것이라는 비윤리적 측면이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원만한 부부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고 여성이 자신감을 갖는 기회이기도 했다.

처녀막의 해부학적 형태는 다양하다. 크게 반지형으로 생겨 탄력성이 있는 것과 지도의 해안선처럼 굴곡이 심해 탄력성이 없는 경우가 있다. 모양에 따라 출혈여부가 결정된다. 늘어져 탄력성이 없으면 출혈이 없게 마련. 출혈이 없다고 해서 ‘비처녀’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형외과의로서 필자의 관심은 처녀막과 순수성의 상관관계에 있는 게 아니다. 불과 5년전에는 ‘있었는데’ 요즘에는 ‘완전히 사라진’ 한 ‘성형수술’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궁금한 것이다. 포기인가, 관용인가.

이강원/성형외과의원장